白부장의 타작마당

[존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 5장 죄에 대해 만족시킴 본문

독서노트/IVP 모던 클래식스

[존스토트, 그리스도의 십자가] 5장 죄에 대해 만족시킴

白부장 2014. 4. 28. 00:59

제2부 십자가의 핵심 중에서 두번째 죄에 대해 만족시킴

 

대속을 통한 만족, 무엇을/누구를 만족시킨다는 말인가?

 

 

마귀를 만족시킴

   - 초대교회 몇몇 교부들(헬라 교부들)의 생각, 예수의 죽음을 마귀를 거꾸러뜨리는 수단일 뿐으로 봄 (오리게네스)

   - 반론 : 마귀의 실제 능력 이상으로 생각 / 십자가를 마귀와 하나님 사이의 거래로 치부 / 그 거래를 속임(마귀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못알아채고 죽였다는)으로 인식

 

 

율법을 만족시킴

   - (라틴 교부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지만 정당하게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러실 수는 없다. 율법의 신성함을 위해서는 십자가가 필요하다.

   성경 역시 이 이론을 지지하는 측면이 있음 (바울의 진술 ex) 갈 3:10,13, 예수님의 순종)

   반론 : 하나님이 율법에 구속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율법을 만드신 분, 데일 :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는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일체(identity)의 관계다.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도덕적 됨됨이의 표현이며, 그분의 도덕적 됨됨이는 언제나 모순이 없기 때문."

 

 

하나님의 명예와 공의를 만족시킴

   - (11세기의 안셀무스) 죄는 곧 하나님의 몫(우리의 전체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것)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것”,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그분에게서 빼앗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것을 갚을 능력이 없는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한다는 의미로 자신을 자발적으로 죽음에 내어드리심

   - 반론 : 스콜라적 논증으로 성경 메시지의 경계를 넘나듬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것은 정확하게 죄인들이 빚진 만큼인가 혹은 그 이상인가..) / 그 시대 봉건적인 문화가 반영된 설명 방식

 

   - 스콜라주의자들은 안셀무스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켜, 십자가의 의미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 강조

   - 반론 : 율법을 만족시킴과 구분되지 않음

 

   - 16세기 이래 현대까지 한층 발전된 논의로 십자가의 의미를 도덕 질서를 만족시킴으로 보는 경향이 생김

   - 도덕 질서 : 하나님의 의로운 품성, 도덕적 품성을 나타냄. 도덕적 표준들만 의미하지 않고, 뿌리깊은 제재의 체계(system of sanctions)까지도 포용함 -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도덕적으로 통치하신다는 신념을 기초함

   - 죄는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의 표현인 도덕적 세계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

 

 

하나님이 스스로를 만족시키심

   - 위의 5가지 의견은 부분적으로는 다 ’, 오해의 여지가 다분함

   - 그렇지만 만족되어야 할 존재는 하나님 자신일 뿐. 이 말의 의미 : 그분은 그분 자신이셔야 하며, 또한 그분의 본성 혹은 이름의 완전성에 따라서 행동하셔야 한다는 의미다. 만족의 필요성은 외부가 아니라, 그분 자신 속에서 그분의 변치 않는 성품/성격 속에서 발견됨

   - 하나님의 일관성(그분이 죄인을 심판하셔야하만 하는 것은 자신에게 진실하시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에 대한 성경의 진술

     1. 분노를 격발한다는 표현 : 악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표현하는 말

     2. 불사른다는 표현 : 하나님이 진노로 불탄다고 말하는 것은 그 분의 분노가 격발되는 때. 그분의 분노는 악에 대한 반응으로써만 격발되었으며, 결코 걷잡을 수 없이 무절제하지 않았다.

     3. 만족이라는 어휘 그자체 : (칼라) 여호와의 진노는 '소진'될 때에야 '끝이 난다.'

       * 여기까진 한쪽에 치우친 묘사 :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배교의 역사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그에 따른 심판에 관심을 집중했다. 하지만 국가의 파멸에 대한 이 위협이 그렇게도 통렬한 이유는 그 저변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 그리고 그들과의 언약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 

     4. 이름이라는 어휘 : ‘자기 이름을 위하여움직이신다는 것은 자기 이름에 참되게 행하기로 결심하심. 자신의 명예나 명성보다는 자신의 일관성에 관심을 두심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 그런데 이것이 속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자신과 화목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택하시는 방법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의 성품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율법, 명예, 공의, 도덕 질서를 만족시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참이지만,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만족시키셔야 한다. 좀더 발전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관련된 이 설명 방식이 우수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포함한 그분의 존재 각각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만족시키신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하나의 사건 속에서 완전 무결한 방식으로, 자신의 거룩과 사랑을 동시에 알려주신 사건”, “십자가는,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 그분의 거룩과 사랑이 똑같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잇는 방식으로, 계시하신 유일한 곳”, “속죄의 객관적인 측면은.. 십자가는 형벌을 수반한 굽힐 수 없는 의와 무한한 사랑이 조합하여 구성된 것이다.”

   - 하나님 존재 내부 안에 있는 다툼의 이중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의 다른 표현일 뿐 (에밀 브루너 : 하나님의 "이중적 성격"은 "기독교 계시의 중심적인 신비"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