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부장의 타작마당

러셀 무어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 본문

독서노트/두피플 2기

러셀 무어의 <<십자가를 통과한 용기>>

白부장 2021. 3. 30. 16:39

 

 

 종교 생활로서의 기독교는 언제든 그 활력을 잃기 쉽다. 다른 종교와 같이 인본주의적 기대를 좌절시키는 요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인간적" 기대를 저어하신다.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나"의 복지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언제든 "우리" 혹은 "그들"에게로 확장시키곤 하신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을 첫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하기 여간 쉽지 않다. 오히려 정말 열정적으로, 또 열심으로 신앙을 하려는 사람에게 슬럼프는 어찌 됐든 필수코스처럼 여겨진다. 그럴 때 우리는 과연 어디서 새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회복의 기대는 과연 어디에서 기원되어지는가?

 이러한 고민 속에서 저자는 엘리야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다소 독특하다. 갈멜산 전투의 영광스러운 영웅이 아니라, 도망자 엘리야가 그의 관심이다. 그야말로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회복되는 엘리야에게 집중함으로 저자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십자가 앞에 세운다. 말이 좋아 "영광"스러운 십자가이지 사실은 인류 역사 최악의 "저주"의 상징인 그 십자가 말이다. 

 

#1. 위기 앞에서

 저자는 "갈멜산은 엘리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한 서곡(30-31쪽)"이라고 바르게 관점한다. 절대권력 이세벨의 격렬한 도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외로움과 낙심과 피로감에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의심하는 수준에 이른다. 단순한 탈진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겨지는 새 주인(바알)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의 디프레스를 단순히 심리적 요인으로 여겨 가볍게 다루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회복은 언제나 본질적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집단에 속해 소시민적 종교주의자로 그치는 인생을 거부하셨다. 그분은 화려하고 주목할 만한 개혁의 선봉장에 서 계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신의 사명-정직과 사랑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시는 일-에 집중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의 갈보리 언덕에서 그분의 신적 용기를 계시한다. 우리가 위기 앞에 있을 때, 절박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성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그 위기를 잘 건너 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2. 두려움 앞에서

 저자는 시인 데이비드 와이트가 진정한 용기가 "강한 취약성"(robust vulnerability)에서 비롯한다(59쪽)고 적확하게 통찰한데서 두려움 앞에 서는 참된 용기를 발견해낸다. 그렇기에 엘리야의 두려움 역시 세상적 관점과 다르게 파악할 여지가 생긴다. "두려움은 엘리야를 어린아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께 돌봄을 받는 상태로 이끌었(73쪽)"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존하게 하는 복음적 반응이다.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기를 인정하고 옳게 두려워하는 법을 배울 때 생겨난다.

 복음에는 항상 역설이 가득한데, 두려움에 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속 관점에서 두려움은 약함과 패배의 상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은 복음에의 깊이를 고취시키는 특별한 은혜에 다름 아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기에 "희생으로 치르는 전쟁(66쪽)"으로 나아가셨다. 강성 혁명가보다 "항복"의 언어로 모욕 앞에서 다른 쪽 뺨을 돌려대시는 예수님이 결국 승리하신다.

 

 #4. 깨어짐 앞에서

 율법주의적 잔재 속에 사는 우리로서는 온전함에 대해 오해하기 쉽다. 세상의 대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삶을 산다는 것은 쉽게 깨어지고 또한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인생길을 간다는 숙명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온전함이란 모든 것이 합쳐져서 일관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뜻"(116쪽)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온전한 일관성의 열쇠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제시한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대세 속에서 오직 엘리야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 그 역시 연약함과 실패 속에 노출되는 삶을 살았으나, 언제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불의에 대항하려고 올곧게 서 있었다. 불편한 진리라 할지라도 그대로 증언하는 선지적 삶이 그가 깨어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구별되지 않는 삶의 지향이 그의 담대함의 핵심이다.

 이 시대 교회가 지향해야할 바가 어디에 있을까? 이미 깨어질 때로 깨어진 것 같은 신앙공동체가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해 들어서야 할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 환경의 변화 등의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말한 대로 살고, 사는 것만큼 말하는 그 신실함에 있을 것이다. 말씀대로 살고, 교리대로 사려는 삶의 스트러글이 바로 회복의 열쇠지 않을까?

 저자가 지적하는 만큼 우리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이다. 명의되시는 하나님의 진단 앞에서 가타부타 우리 의견을 제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것만큼 아픔에 대한 비생산적인 대응이 어디 있을까? 지금의 한국교회 역시 많이 아프다. 그렇다면, 아픈 우리에게 주어진 처방전에는 무엇이라 써 있을까? 깨어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은 무엇인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질 때 찾아오는 온전함,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길이다. 우리의 깨어짐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처방에 내어맡기자.

 

#7. 불의 앞에서

 누군가 한국교회는 "불의보다 불이익"에 큰 목소리를 낸다고 비판했던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부정할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시대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 보니까 정의를 분별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하소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많은 교회가 "도덕적인 맹목"으로 인해, 즉 주변 세상에 완벽히 적응한 나머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잘못인지 모르는(228쪽) 참상을 고발한다.

 크리스천에게 정의는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논리이지만 명확하고 확실하게도) 하나님께서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한 농부의 포도원을 빼앗는 아합과 이세벨의 잔인한 비열함을 꾸짖는 사건을 보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 앞에서 영원하지 않은 세속 권력으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청산하는 날"(236쪽)이 있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크리스천들이 불의 앞에서 분기탱천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성경적 정의는 어떤 특성을 갖는가? 성경적 정의의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는, 정의가 '무엇'인지 뿐만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의 문제를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다층적 사회 속에서 정의의 균질한 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면에서 하나님께서 때로는 기울어진 판단을 하시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는 것도, 결국에 누구에게 적용되는 정의의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구약에서부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선대하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인식을 상고하자. 하나님은 보편성에 기댄 단순한 이론적 정의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실천적이고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정치적 판단이 그의 관심일 때가 많다. 또한 하나님의 어떻게는 영웅적 단독자가 아니라 소시민적 소수를 향할 때가 많다. 엘리야에게 그의 사역을 대신할 사람들의 이름까지 밝히시는 하나님의 치밀함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심에 있어서 그의 주권으로 행하심을 방증하는 상징적인 서사이다.

 저자가 정리한 한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는다. "영웅이 아닌 제자의 길을 가라" 신앙적 영웅이 되려다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관심은 내가 아니다. 내가 영웅이 되고 나의 족적을 남기는 것이 사역의 본질이 아니다. 단순하게 주님을 따르자. 제자의 길을 가자.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내 이웃에게 행하실 그분의 열심을 목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자. 

 

#. 마치며

 본서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엘리야 서사의 색다른 통찰과 예수님 십자가의 참된 의미가 완벽히 버무려진 탁월한 저서이다. 십자가가 단순히 구원의 방편으로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십자가를 바르게 통과하는 용기를 통해 각팍한 삶을 마주할 담력을 얻게 하는 존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엘리야 이야기, 복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설교자들뿐만 아니라, 신앙적 타성을 극복하고 영적인 부흥과 회복을 갈망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본서를 추천한다. 

 

 

"이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