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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두피플 2기

김경열의 <<드라마 레위기>>

白부장 2021. 2. 5. 16:01


통곡의 벽? 통독의 벽!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난관 중에 하나가 분명 레위기 돌파하기다. 믿음의 거장이지만 나처럼 실수 투성이었던 아브라함 이야기나 잘생긴 요셉의 인생역전 스토리와 같은 내용을 읽다가, 피 튀기는 제사법들과 알 수 없는 음식규정, 지금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회법의 총체를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다. 어쩌면 출애굽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언약식과 성막 제작에서 이미 시작된 우리의 인내심이 자연스레 레위기의 생소함에 도달하여 백기를 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레위기 전문가로서 성도들의 이런 어려움을 확연히 인식하는 가운데, 그들이 갖고 있는 레위기에 대한 생소함을 일소시켜 주는 방법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경이해 고취에 봉사하고 있다. 특히 본서는 각 본문에 대한 설명 이전에, 저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드라마로 레위기의 생소함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친근함으로 일신시켜준다. 본서는 통독의 벽이었던 레위기에 대한 이해를 고양하여서, 레위기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감동의 통곡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진짜 예배를 배우다!

레위기의 첫 일곱 장은 제사법에 대한 내용이다. 출애굽기 말미에 성막 제작을 완료한 이후에, 그 성막에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하게 할 제사법을 어떤 행위에 대한 율법보다 먼저 두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실패할 것을 아시고, 그 실패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나와 신령한 교제를 회복할 방안을 사전에 예비하신 것이다. 이렇게 레위기는 기존 고정관념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섬세한 은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제사법을 통해 우리는 경제력의 크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의 효력에 하등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보았다. 소와 비둘기는 크기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든 제물을 동등하게 평가(“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하신다(50쪽). 과부의 두 렙돈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그저 마음 다해 정성껏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또한 예배자는 구경꾼이나 심사자가 아니라 참여자다(54쪽). 현대적인 예배는 일종의 콘서트와 같은 느낌의 수동적 형태를 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본서에서 제사장과 헌제자가 교대로 제사 절차를 수행하는 것을 정리하여, 우리의 예배를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51쪽).

어떤 것보다 궂은 일은 헌제자 스스로 하는 태도가 제사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현대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예배를 드려준다” 등의 용어는 예배의 본질에서 완전히 어긋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역자나 설교자의 예배가 아니라 나의 예배를 드려야 하고,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말씀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일상의 영적 피튀김을 갖고 예배에 나아가야 한다.


죄의 심각성에 대한 고찰!

제사법을 깊이 묵상할수록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중대 범죄인지 깨닫게 된다. 특히 속죄제 절차를 고찰할 때 그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제사장이 제단 네 뿔에 피를 바르고 남은 모든 피를 제단 밑에 쏟는 행위를 주목해야 한다. 이 때 이렇게 피를 뿌리고 바른 다음에 나타나는 효과는 제단의 씻음, 즉 제단 정화였다(108쪽). 다시 말하면, 우리의 죄와 부정결은 나 하나의 치욕적인 과거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의 제단이나 향단을 오염한다는 것이다(그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 이를 위한 속죄제의 매커니즘은 아래와 같다(111-12쪽).

1) 죄인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할 때 자백과 더불어 죄가 짐승에게 넘어간다.
2) 짐승이 도살될 때 그 짐승이 죗값을 치르고 피 흘려 죽는다.
3) 제사장이 피를 성전의 기물(제단이나 향단)에 뿌리고 바른다.
4) 이 때 기물과 성전이 깨끗이 청소된다.
5) 피를 통해 기물의 오염이 흡수되어 짐승의 고기로 넘어온다.
6) 속죄제 짐승의 고기에는 예배자의 죄와 성전의 오염이 옮겨져 있다.
7) 오염되어 있는 짐승의 고기를 태우거나 제사장이 먹어서 처리한다.
8) 오염이 심한 고기는 진 밖의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서 없앤다.
9) 오염이 경미한 고기는 먹을 만했기에 제사장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10) 최종적으로 속죄가 성취되고 죄 사함이 선포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성전 제단의 정결이 인간의 죄 사함과 연결되는 과정에 숨긴 신비이다. 저자는 이 과정의 연결고리를 시내 산 언약식(출 24장)에서 발견한다. 성전을 대표하는 제단과 백성의 대표들이 언약의 피로 범벅이 되어 언약적인 결속이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신구약의 구속사 흐름 및 성전과 교회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음(112쪽)을 증명한다.

삼겹살 먹지 마라!

도발적인 제목의 본 챕터는 11-15장의 부정결의 근원적 원리를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동안 논의되었던 보건-위생학적 해석, 풍유-상징적 해석, 이방 제의 기원설, 생태학적 설명 등을 다룬 후, <질서와 무질서>로 설명한 구조주의적 설명(메리 더글러스)의 약점을 극복한 <생명과 죽음>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나아가 저자는 여기에 신체적 완전성의 원리가 덧붙여진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세끼 밥을 먹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신분을 기억했다(176쪽)고 설명한다. 삼겹살을 먹고 안 먹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거룩에의 순종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거룩과 사랑은 하나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246쪽). 레위기 19장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공동체의 거룩 안에 공동체를 세우고 돌보기 위한 사랑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19장은 대체로 인권과 관련된 법들이다. 즉 주로 약자보호법과 더불어 거짓된 행위, 불의한 상거래, 그리고 불공정한 재판을 경고하는 법들이다. 특히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외국인 거류민)는 경제적 책임을 지는 가장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기 때문”(249쪽)이다.
예수님이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율법을 정리하신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의 복지가 불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법을 고대의 유산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땅의 휴경(안식)과 빚 탕감, 노예 해방을 통해 온 우주의 리셋을 꿈꾸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은 어쩌면 이 땅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적 가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 정도로 인간은 불로소득을 사랑하고, 나의 부동산에 목숨을 건다. 인간적인 현실이, 성경적 가치의 제도적 승화로의 막막함이, 하나님이 꿈꾸는 나라를 그저 영적으로 축소하기 쉽게 만들 때, 저자는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경제사상을 제시한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토지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여 공공의 혜택으로 돌리는 제도를 마련하는데 있다. 이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지본주의” 사상으로 성경의 토지법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경제 이론으로 삼았다고 첨언한다. 한 때 외곽에 머물렀던 그의 주장이 현대에 와서 재평가 받고 한국의 토지 공개념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서술(309-10쪽)하면서, 성경이해의 이분법적 환원주의의 가능성마저 제거하고 있다.

 

레위기의 최종 목적

성경의 한 구절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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