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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랜드, 필립 얀시의 <<몸이라는 선물>> 본문

독서노트/두피플 2기

폴 브랜드, 필립 얀시의 <<몸이라는 선물>>

白부장 2021. 1. 31. 19:35

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와 한 몸의 의미

본서는 참 독특하고도 어렵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몸"이라는 소재를, 의학적 전문성의 낯설고 강력한 유비에 통과시켜 복음과 공동체가 무엇인지 도출해내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정형외과 의사 폴 브랜드의 경험과 전문지식이, 일상의 신비를 통찰력 있게 풀어내곤 하는 필립 얀시를 만나 꽃을 피웠다. 다만, 의학적 서술이 상당해 꼼꼼하게 읽어나가기에는 독서의 기초체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낱 오합지졸인가, 가치 있는 어우러짐인가

저자는 세포의 다양성에 집중한다. "내 몸의 다양한 세포를 통해 가정, 집단, 공동체, 마을, 국가 등 더 큰 유기체를 배울 수 있다(72쪽)"며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하나님께서 딱정벌레만 해도 수십만 종을 고안해 내신 창조주시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새삼 강력하게 다가온다. 기실, 우리 모두는,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획일화와 전체주의적 집단문화에 익숙한 관습들로 인해 교회마저 그렇게 만들 때가 많지 않은가? 저자는 세포의 유비를 통해 "이처럼 어떤 공동체든 연합의 기초는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에서 시작된다"고 정리한다.

사역자 입장에서 공동체를 섬길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성경을 이해하게 만들 때 사역이 얼마나 용이해지겠는가. 그러나 공동체는 본질상 다양하다. 하나님의 크심을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획일화를 지양하고 공동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역이 필요하다. 전통을 고수하는데서 벗어나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 가운데 꽃 피울 다양성을 제고하도록 하자.
성경적 공동체의 본질이 확장되면, 사회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쉬이 용납하게 된다. 저자가 “어느새 건물 경비원의 인격적 가치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보다 떨어져 보인다(79쪽)”고 솔직히 고백한 내용이, 저자의 연약함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한국교회 역시 사회가 내재적으로 수납하는 계층화를 기복적 신앙의 용도로 오용하고 있지 않는가?


피부,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매력적인 소통 기관

저자는 피부 세포가 정서를 움직인다는 사실에 포착해서 예수님의 사명의 성취를 질감있게 설명해낸다. 모든 포유류 새끼가 ‘접촉 위안’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상처받는 죄인들은 “따뜻한 사랑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단순히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그분의 사명은 개개인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고, 그 섬김의 목록 중에 질병의 치료가 있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언제든 각 영혼의 전인적 회복을 추구하신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율법적 금기를 넘어 그렇게 자주 “만지며 치유”하신 것이다.
저자 역시 의료활동 중에 한 한센병 환자에게 들었던 말을 독자들에게 건네준다. 울먹이는 환자의 말을 전해준 조수의 말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아닙니다, 선생님. 어깨에 선생님의 손이 닿아서 울었답니다. 여기로 오기 전에는 여러 해째 자기 몸에 손을 댄 사람이 아무도 없었대요.


단단한 필수 골격, 몸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주다

뼈가 단단하게 온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영적인 몸인 교회 안에도 불변하는 핵심 진리가 있다(179쪽).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들이 삶의 일부 영역에서 제한 규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법, 율법은 자유를 주는 제약으로 교회를 든든히 지탱한다. 특히 저자는 부정적인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는 십계명을 긍정적인 진술로 바꿔 독자에게 안내해주는데(185-86쪽),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본서에서 가장 탁월한 지점으로 여겨졌다.

1. 나는 너희를 한없이 사랑하기에 나 자신을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에게 필요한 하나님은 영원히 나뿐이다.
2. 나는 너희와 직접 관계를 맺고 싶다. 대용품은 열등하다. 너희에게는 내가 있다.
3. 너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는 특권이니 귀히 여기라. 너희의 새 이름을 더럽히거나 그에 부응하지 못한 삶으로 이 특권을 남용하지 말라.
4. 나는 너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주어 거기서 일하고 놀고 즐기게 했다. 다 누리되 하루를 떼어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라. 너희 몸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영혼에는 환기 장치가 필요하다.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모든 사람의 생명은 신성하다. 인간을 통해 나의 형상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신성한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7. 결혼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외로운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 육체의 친밀함을 그 본연의 자리인 결혼 관계로 국한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가 싸구려로 전락해 파괴돼 버린다.
8. 나는 너희에게 사유 재산이라는 큰 특권을 주었다. 도둑질은 그 권리를 침해한다.
9. 나는 진리의 하나님이다. 거짓말은 계약과 약속을 파괴하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너희는 신뢰받기에 합당한 존재니 그에 걸맞게 거짓말을 삼가라.
10. 나는 너희에게 소, 곡식, 금, 음악 등 좋은 것들을 주어 누리게 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재물은 그저 이롭게 사용하라. 재물을 사랑하느라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


저자의 다음 진술은 너무 탁월하다.
십계명은 연골이 처음 골화되는 시기인데 태아의 뼈 발달에 해당한다. 반면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법은 발육이 완전히 끝난 상태라서 뼈를 자유롭게 해준다. 관절마다 사랑으로 제자리에 척척 들어맞아 더 큰 몸인 교회의 동작이 원활해진다.” (188쪽)

나에게는, 십계명 혹은 율법에 대해 정확한 성경적 지식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개념 중에 하나였다. 단순한 정보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의 마음에 깊이 남는 유비로 전달돼야 그들의 삶에 적용이 될테니까, 그걸 생각해보면 고민이 참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본서의 이 내용을 읽는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율법이 공동체의 뼈처럼 핵심 지지대가 된다는 사실과, 단순히 법정적이고 확정된 명문으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정신이 전수되고 발전되어 구현되는 율법이라는 특징, 나아가 그 율법의 본질이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이 모두 이 비유에 담겨있다. 성경 진술이 아니긴 하지만, 위 문장에 “아멘”을 외치고 싶다.


뇌, 독불장군 리더가 아니다

“인체의 모든 결정을 뇌가 의식적으로 명령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관리의 원칙인 위임에 어긋날 것이다. 대신 많은 평범한 상황은 믿을 만한 반사 신경이 처리한다(354쪽).” 이를 통해 저자는 예수님의 머리되심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제공한다. 이전에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 말씀하실 때는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의 측면만 생각한 것이 다이다. 그러나 뇌가 지배할 때도 위임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예수님의 교회의 통치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물론 성경 저작 당시 저자들이 위와 같은 뇌의 기능적 본질을 충만히 이해한 채 그와 같은 명제를 도출해낸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가 때로는 침묵하시는 것과 같은 우리 주인의 말씀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실천적 명령과 가깝게 인도해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나아가 다음 챕터인 [뇌, 수많은 살아 있는 배선을 통해 현실을 향해 발돋움하다]를 통해, 예수님께서 비루한 제자공동체(와 그 뜻을 이어받는 성령공동체 교회)에게 지상명령을 위임하시고 떠나신 이유를 감각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땅 가운데 성육신하게 하는 분명하고 확실한 통로이다. 교회가 때로는 세상에 멸시를 받고, 때로는 스스로의 연약함으로 주님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이 될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증언하실 것이다.


추천의 말

본서는 우리의 복음에 대한 이해에 입체감을 제공한다. 교회의 하나됨이라는 명제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역사임을 깨닫게 해준다. 의학적 정보들은 충성스럽게 읽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가볍게 읽더라도 꾸준함만 유지한다면, 그 정보 너머에서 풍성하게 드러난 복음과 교회의 진가에 대해 감탄하는 독서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적 배경지식이 다소 구비되어 있고 조금 더 성경적 진리에 대해 풍성함을 기하고 싶은 성도님들에게 본서를 추천한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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