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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익의 <<설교 듣는 법>> 본문

독서노트/두피플 2기

김형익의 <<설교 듣는 법>>

白부장 2020. 11. 1. 08:14

 

 

 

 

 

[설교를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이전에 미처 감각조차 하지 못했던 어떤 영역이 내 눈 앞에 펼쳐보여질 때일 것이다. 본서 <설교 듣는 법>은 내게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사역자, 설교자로서의 부르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이전에는 설교를 듣는 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다.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설교자가 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회중이 그 설교를 바르게 듣는 일이 필요합니다(7쪽).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하나이며, 또 하나가 돼가는 공동체(엡 4:13)라는 비전에 헌신할 때, 바른 말씀을 선포하는 그 한 축에만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실 때 사역자들의 카리스마로 이끌어지는 조직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 돼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공동체로 부르신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설교를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위해 각 성도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존 파이퍼는 아래의 10가지를 제안한다.

1. 하나님께 착하고 좋은 마음을 달라고 구하라.
2. 말씀 묵상을 설교의 애피타이저로 삼아 영적 식욕을 돋우라.
3. 세속적 즐김에서 마음을 지키고 순전한 마음을 준비하라.
4. 당신이 이미 가진 진리를 신뢰하라.
5. 토요일 저녁에 좋은 휴식을 취하라. 피곤은 적이다!
6. 화낼 일, 원망할 일, 비난할 일 모두 예배 전에는 참고 또 참아라.
7. 온유하고 배우는 심정으로 와라.
8. 예배당에 들어오면 조용히 마음과 생각을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라.
9. 예배가 시작할 때 찬송, 기도, 설교에 간절히 마음을 드려라.
10.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바라라.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가?]

 필립스 브룩스는 "설교란 진리가 인격을 통하여 전달되는 것"이라 정의한다.

설교란 한 경건한 인격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설교는 진리가 사람의 인격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인격적 커뮤니케이션입니다(22쪽). 

 한편,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경, 설교의 3 용례가 있다. 로고스이신 성자는 경배의 대상이고, 성경은 무오하나 경배의 대상은 아니며, 설교는 경배와 무오의 대상이 아니다. 설교는 경배받아야 할 대상이거나 무오한 내용일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의 요소가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래의 인용과 같이 설교의 목적과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과 십자가 복음이지만, 이 진리적 요소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채널이 바로 사역자의 인격성이다. 설교자로서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청중으로서도 이와 같은 설교의 요소에 대한 분명한 인지가 필요하다. 

설교의 두 요소: 진리의 요소 + 인격성의 요소
설교의 목적: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영광을 말씀으로 드러내는 것
설교의 핵심 내용: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렇기에, 설교를 듣는 자에게 가장 필수적인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분별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채널과 그 컨텐츠(핵심 내용)를 분별하고, 이를 통해 설교의 목적(영광의 하나님)이 분별조차 할 수 없는 무가치한 우리에게 적용되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별과 은혜는 미룰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이 곳에서 이뤄져야 할 영생이 걸린 성도의 핵심 태도이다. 간단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끊임없이 설교자를 넘어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는 성도가 돼야 한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기]

  저자는 히브리서 기자의 명령을 인용하여 설교 듣는 자들의 태도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1. 적극적 차원: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2. 부정적 차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

 C.S.루이스는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린 100명의 사람 중 기독교 신앙을 버리겠다는 이유 있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다수는 천천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떠내려간 사람들이다."라고 정곡을 찌른다. 이것이 바로 부정적 차원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성경의 의도이다.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움직임이 없는 호수가 아니라, 물살이 꽤 거센 강물이기 때문에 적극적 차원에서 설교를 들은 후 그 메시지가 열매로 나타날 때까지 끝까지 수고를 들여 붙잡아야 한다.

 

[자기 부인과 가난한 마음]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자기 기만이 종교성이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둘러싸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귀 안에는 들어아도 마음의 중심에 심기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의 영혼의 좌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심겨 열매를 맺으려면 자기 기만의 밭을 자기 부인과 가난한 마음으로 기경해야 한다. 

우리는 평생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설교 듣기, 혹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듣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우리가 들은 말씀에 믿음을 결부시키는 일, 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곧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자기 부인과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설교가 들리지 않는 이유]

1.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를 때 들리지 않는다.
2. 하나님이 책망하실 때 들리지 않는다. 
3. 설교의 주제에 관심이 없을 때 들리지 않는다. 
4. 설교가 짐으로 여겨질 때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위의 4가지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이유를 관통하는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는데 있다.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이 사람의 분노처럼 오해되거나,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짐을 지워주는 악덕업주 같이 느껴지는 모든 오류가 바로 하나님 자체를,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핍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이 놓여 있습니다(180쪽).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헌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인격과 그 말씀이 분리되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해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지 말고,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를 찾으며,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분별하고, 그 말씀을 거스리지 말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짐이 아니라 은혜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추천의 말]

 본서는 설교를 핵심으로 삼는 교회에 필수적인 관점을 제공해준다. 물론 저자가 서두에 밝히듯이 본서는 바른 설교가 선포되고 있는 상황을 전제한다. 실제 한국교회에서 바른 설교가 선포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편적이기에, 교회개혁을 위한 접근의 상당수가 설교자와 설교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본서는 이런 불균형 가운데서 성도들의 책임을 함께 제공함으로 교회 공동체 전체의 연대감을 고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본서는 교회 전체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각 지역교회에서 설교듣기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고군분투하는 성도들에게 본서를 추천한다. 본서는 어쩌면 반복되는 설교듣기에 이력이 난 성도들에게, 그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의 영광이 어떠한지 상기시켜주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매주 예배 현장에서 강단 위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여겨질 때, 여전히 하나님의 시선이 그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각 사람에게 꽂혀 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설교자들에게도 본서를 추천하는 것은, 설교듣기를 성도들에게 바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르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러한 수고와 노력을 스스로 기울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 모두는 타락한 존재들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지 않는가.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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