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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인류의 헌장) 다윗 언약

白부장 2020. 3. 23. 15:36

 파편처럼 떠돌던 성경의 각 내용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경험은 언제나 큰 감동을 준다. 그것은 고고학적 탐사와 발견의 결과로 인해 ‘성서’의 내용이 역사(歷史)적 사건으로써 사실이라고 증명될 때 느끼는 기쁨과도 차원이 다르다. 바야흐로 ‘서(書)’가 ‘경(經)’으로 상승될 때의 그 감동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진행하는 역사(役事)로써의 ‘성경’이 우리 영혼에 침투해오고 있다는 진실을 마주한 인간의 근원적 희열과 다름없다.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 그레고리 빌의 『성전신학』을 읽었을 때 위와 같은 감동이 있었다. 성경의 구속사를, 에덴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성전’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에서 감탄을 그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신학적 지식이 미비하였고, 원어실력을 바탕으로 한 성경주해 과정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저자의 저술방식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소위 말하는 “인생의 책” 세 권 가운데 한 권으로 반드시 뽑을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김진수 교수의 『다윗 언약』을 만나게 되었다. 본서는 그레고리 빌의 책(물론 번역서의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에 비해 다소 쉽다 여겨질 정도로 읽기 수월하다. 또한 각 과마다 요약정리와 반복학습이 이뤄지고 있어서 독서와 함께 머릿속에 개념들이 정리되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다루는 내용과 그 깊이에서 오는 감동은 『성전신학』을 읽었을 때 못지않았다. 구약과 신약이 “언약”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언약의 성격이 역사를 거쳐 어떻게 적용/성취되는지 등의 내용이 탁월하게 정리돼 있어, 익숙하게 아는 듯 했지만 사실은 기초가 부실했던 본인의 성경적 사상을 촘촘히 채워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리 작업은 단순한 지적욕구의 충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메시지가 한 초점에 모여 결국 영혼의 불을 일으키는 것 같은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그동안 꽤 관심이 가던-특히 역사서-비평적 이슈, 고증학적인 불일치 등에 대한 호기심은 지양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대해 알고 그저 순종하고픈 열정이 생겼다.

 

 한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가진 첫 반성은, 이전까지는 언약을 구원에의 약속에만 집중해서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아니겠지만, 언약이 소중히 담고 있는 의미(혹은 목적)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기능에만 단순히 머물렀던 무지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언약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나라(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지향”(13쪽)한다는 방향성을 일관적으로 제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세상이 안식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큰 계획안에서 세상 역사는 궁극적으로 안식의 실현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25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에 위치한 구속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왜 온 우주를 창조하셨는가와 관련된 창조신앙까지, 균형 잡힌 성경 이해의 단초를 여기 언약과 안식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본인을 포함해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다소 불균형적인 영성에 균형감각을 길러줄 만한 참 지식이지 않을까.

 새로운 통찰력을 얻은 부분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이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조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수아와 다윗의 관계였다. 바로 “다윗은 여호수아가 시작한 정복전쟁을 종결지은 인물”(28쪽)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인식의 지평에서는 파편으로 존재하던 각각의 인물들이,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구속사의 ‘이어 달리기’에서 서로 바턴을 주고받는 사이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또한, 다윗의 “등불”을 통해 열왕기서와 사무엘서가 같은 관점으로 호흡하고 있음(238쪽)을 확인한 부분도 성경의 통일성을 제고할 수 있어 좋았다. 각 역사서간에 관점의 미묘한 상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역사기술의 특성 자체를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종종 마음을 무겁게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맥락이 종종 있었는데 본서를 통해 해결된 부분도 있었다. 찬찬히 돌아보니 본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과 피는 다윗의 문제점이 아니라 그가 처한 시대적 특수성을 가리키는 말”(82쪽)이라고 말끔히 정리한 이후에, 솔로몬 때에야 성전건축을 허락하신, 아니 다윗의 때에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를 전쟁의 때에-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에-하나님의 궤가 당연히 이동에 편리한 “장막”(텐트)에 머물러야 했다고 해석한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좀 못 되게 구시는 것 같다’는 나의 편견을 일거에 제거해버렸다. 또한 “웃사의 희생”에 관한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처분이 과하시지 않은가 하는 오해가 있었는데, 다윗(이스라엘)에게 있어 신관이 교정되어야 하는 막중한 시점이었다는 차분한 변증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을 복기해본다. 저자는 여기서 “인류의 헌장”이라는 마음과 기억에 딱 와 닿는 단어조합을 뽑아내서, 이를 다윗 언약과 동반하게 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원칙이 바로 다윗 언약이라는 말씀(225쪽)을 강력하게 이미지화하였다. 이를 마주한 독자들은-첫 페이지에서 책의 제목을 대할 때부터-필경 복음 전도의 열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본인도 신학공부를 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 교회사역을 생각하고 대부분의 에너지를 제자(성도)들을 위해 사용하는 가운데, 섬김의 경계를 자꾸 교회 안으로 국한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뜻은 언제나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교회 밖 온 우주를 향하고, 온 세계를 바라보고 계시다.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하신 아브라함 언약을 이어받은 다윗 언약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특정 왕조만이 아니라, 보편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226쪽)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언약 백성을 “as the apple of his eye”(NIV)라는 아름다운 표현까지 써가며 친히 돌보고 지키길 원하시는데,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백성의 범위가 확장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딤전 2:4)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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