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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니고데모의 안경 (11년 10월)

白부장 2016. 7. 6. 00:55

언젠가 다이어리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시각이 가장 균형 잡혀 있다 생각하지만.. 일단 자신이 얼마나 경향성이 심한 사람인지 깨닫는다면, 우리네 관계들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최대한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 가치관 등으로 인해서 상대방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답답한 마음에 써내려갔던 일기였다.

그런데 이 짧은 글 속에도 세계관의 함의가 들어가 있다. 생각해보면 비단 인간관계 뿐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인식한다. 나와 타자, 혹은 대상이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어떤 인식의 틀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틀을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세계관은 사전적으로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세계에 관한 통일적 파악(네이버 백과사전)’이라는 뜻이고, 저자는 본서에서 안경으로 비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안경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안경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성경의 근본 주제인 창조-타락-구속이라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일치시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세계관의 문제는 어떤 신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이고 영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요즘의 학생들을 만나보면, 많은 학생들에게서 신앙과 세계관이 따로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신앙의 차원에서의 하나님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감정적인 무엇으로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으로 인해 고쳐써야할 우리의 안경, 즉 세계관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것 역시도 우리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믿음행위에 대한 억지의 구분을 통해 이신칭의의 교리를 우리 편의에 따라 해석해서 행위 없는 믿음, 삶의 열매 없는 구원을 자꾸 드러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식일 수 있겠다.

 

연세죠이의 학생들을 보면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성공주의적인 세계관에 붙잡혀 있는 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성공에 대해 각자 규정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긴 하고, 비록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성공의 개념이 세상에서 잘 나가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세속적 가치관은 아니지만, 그들 안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세계관은 자신의 인생에서의 성공이다. 학생들이 인생에 대해 갖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들어보면 많은 학생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보통 균형과 안정이다. 단적인 예로 이상적으로 꼽는 선배의 모습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봉사활동 등을 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사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복음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바꿔주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인 것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하고, 타락한 인간의 죄악의 문제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와 인간과 자연의 문제들, 그리고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에 대해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보는 시각들을 바꿔주는 것이 내가 감당해야할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번 주부터 학생들과의 만남 가운데서 세계관의 문제를 한 번 건들여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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