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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지혜서 연구] 제3장 욥기 본문

독서노트/대략, 요약

[구약 지혜서 연구] 제3장 욥기

白부장 2020. 4. 3. 10:37

제3장 욥기_고난의 더 깊은 의미

 욥기는 구약성경 중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문학 전반을 놓고도 그 문학적 가치가 가장 높은 책 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라 욥기의 다루는바 인류 최대의 난제인 고난의 문제, 특히 의인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신학적 토론도 탁월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욥기는 원어의 어휘와 구문, 문장의 어조 등이 난해하며, 주체 자체도 명징하게 밝히기가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1. 욥기 이해를 위한 배경적 지식

 고대의 많은 작품들과 욥기를 비교연구하거나 문학적 상호연관성을 밝히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욥기가 시도하는 인류의 보편·지속적 경험으로서 ‘설명되지 않는 고난’에 대한 ‘답’은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뛰어나다. 

1) 명칭: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책명[룻기, 에스라, 느헤미야]을 붙였다. 아카드어 문건들에서 ‘욥’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내)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가?”라는 뜻일 것이다.

2) 정경에서의 위치: 책 자체의 난해성에 비해 정경성이 크게 의심된 적이 없고, 잠언, 전도서와 함께 지혜서로 분류된다. 이 중 실천적 지혜의 잠언과 달리, 욥기는 전도서와 함께 사색적 지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신정론을 문제 삼아 강력히 반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반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고민을 넘어 하나님의 지혜 또는 주권에 의지하는 고차원적 신앙으로 도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 텍스트: 욥기 본문을 읽는 것이 비교적 난해한 것은 오히려, 현재 우리가 가진 맛소라 텍스트가 매우 고대의 본문을 반영하며 원문에 비교적 가까운 것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 한편, 본문의 난해성을 극복하기 위해 고대 역본들은 쉽게 풀어 번역한 흔적들이 많다.

 

2. 욥기의 구조

 욥기의 구조 자체는 비교적 명료하게 파악된다. 큰 구조를 보면, 산문으로 된 서언과 결언이 책 전체의 틀을 형성하면서, 그 안에 시로 된 대화들을 싸고 있는 A-B-A’의 봉투구조(inclusio)를 이룬다. 

 1-2장     서언(the prologue) (시련을 맞는 욥과 세 친구의 도착) A

 3:1-42:6  대화들(the dialogues) B

   3장        욥의 개시 탄식-저주

   4-27장     3회에 걸친 세 친구와 욥 사이의 대화 난타전

   28장       지혜에 대한 찬양

   29-31장    욥의 무죄 선언

   32-37장    엘리후의 연설

   38:1-42:6   신현(神顯)과 여호와의 담화

 42:7-17   결언(the epilogue) (욥의 회복과 하나님의 무죄 증명) A’

 

이 중 3회의 대화 난타전 구조는 다음과 같다.

 4-14장   제 1회 난타전

4-5장 엘리바스의 연설(Ⅰ-1)

6-7장 욥의 응수(Ⅰ-1)

8장 빌닷의 연설(Ⅰ-2)

9-10장 욥의 응수(Ⅰ-2)

11장 소발의 연설(Ⅰ-3)

12-14장 욥의 응수(Ⅰ-3)

 15-21장   제 2회 난타전

15장 엘리바스의 연설(Ⅱ-1)

16-17장 욥의 응수(Ⅱ-1)

18장 빌닷의 연설(Ⅱ-2)

19장 욥의 응수(Ⅱ-2)

20장 소발의 연설(Ⅱ-3)

21장 욥의 응수(Ⅱ-3)

22-27장.  제 3회 난타전

22장 엘리바스의 연설(Ⅲ-1)

23-24장 욥의 응수(Ⅲ-1)

25장 빌닷의 연설(Ⅲ-2)

26-27장 욥의 응수(Ⅲ-2)

(3회 난타전에는 소발의 연설이 빠지고 따라서 Ⅲ-3은 존재하지 않음)

 

 또한, 38:1-42:6 여호와의 담화(discourses)는 아름다운 시로 지어져 있어 구약 시의 백미임 

38:1-40:2 여호와의 말씀Ⅰ(창조의 지혜)

40:3-5 욥의 답변Ⅰ(자신의 ‘작음’ 인정-입을 다뭄)

40:6-41:34 여호와의 말씀Ⅱ(브헤못, 리브야탄)

42:1-6 욥의 답변Ⅱ(자신을 부인하며 ‘불가해합니다’ 고백)  

 

3. 욥기의 주요 대화 부분에 대한 분석

 전통주의자들인 친구들이 보응의 원리를 강하게 욥의 상황에 적용시키고, 욥은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며 그 속에서 신정론의 고민을 충분히 드러낸다. 진지한 신학적 대화가 첨예하게 오고 간 후, 여호와의 담화가 드러나 이런 고민에 대한 모종의 답변을 주고 있다. 

1) 책의 줄거리

욥은 의인으로서 우스[에차(상담), 야아츠와 같은 어근; ‘지혜’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암시] 땅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곤경(인재-천재-인재-천제+온 몸에 종기)이 덮쳐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 때 그의 세 친구가 찾아와 그의 모든 고난과 불행의 원인을 욥의 죄 때문이라 지적[인과율의 그물(the web of causality) 철학]한다. 이에 욥은 한편으로는 친구들의 철학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이 정말로 정의를 시행하시는가 강한 불만을 표출한다. 한편, 새로 등장한 엘리후는 그 장황한 연설에 상반되게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2) 보응의 원리(Retribution Principle)

 욥기의 상당부분이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친구들은 의인의 고난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하며 ‘보응의 원리’에 교조주의적으로 함몰된 모습을 보인다. 

3) 욥의 응수

욥은 극히 의로운 사람으로서, 욥기 화자가 한 번(1:1), 하나님이 두 번(1:8, 2:3)이나 확인해주었다. 그래서 욥은 스스로 무고한 자의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나아가 욥은 자신이 완벽한 선이라 믿어왔던 하나님마저 사실은 무자비하시고 예측할 수 없는 잔인한 분이라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 친구들에 대한 욥의 응수는 아래 네 가지 요소로 분류할 수 있는데, (1), (2)는 욥의 어떤 인격에 대한 공격, (3), (4)는 그 공격에 대한 논리적 변명을 다룬다. 

(1) 하나님을 향한 탄식(불평): 욥의 연설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그의 연설의 기본 정서이다. 뒤의 모든 요소들을 있게 만드는 근원적인 요소/3:23-26; 6:1-3; 7:11-21; 10:1-22; 13:17-28; 16:6-17; 19:1-12; 30:1-31

(2) 친구들에 대한 질책: 16:2의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miserable comforters are you all)”라는 구절이 핵심 내용/12:1-4; 13:1-12; 16:1-5; 16:18-17:2; 17:6-16; 30:1-8

(3) 자신의 결백을 주장/고집: 욥의 응수에 두루 퍼져 있으나 특히 31장 전체가 “맹세” 형식으로 결백을 주장한다. 특히 맹세 공식은 연설을 듣고 계신 하나님에게 상당한 구속력을 끼쳐서 침묵을 깨고 뭔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작용/6:24-30; 23:1-7; 31:1-40  

(4) 보응의 원리를 부정: (3)의 결백 주장/고집과 불가분의 관계. 여러 군데에서 탄식 요소와도 중첩. “공허한 빈껍데기”, “거짓”이라며 전통 사상을 반대하고,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무의미(meaningless)하고, 하나님 자신도 불의(unjust)하다”고 공격함/9:13-24; 12:5-25; 21:1-34; 24:1-12

 

4)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답

하나님의 말씀은 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 자체, ② 치열한 신학 논쟁 후의 답, ③ 하나님 말씀 이후 사태 종결로 보아 욥기의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욥이 제기한 질문 중 (3), (4)에 나타나는 의인의 고난에 관한 이슈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한편 (1), (2)에 대한 답은 결언(42:7-17)에서 응답되었다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정의의 문제”(the idea of justice)를 책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하나님은 ‘도덕이 없는/도덕과 무관한’(amoral) 분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고 파악하는 것은 과격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피조계의 도덕 질서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도덕을 초월한’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보응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시다. 또한,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의 불가해한 신비들(unfathomable wonders)을 상기시키는 압도의 교육(education of overwhelming)을 통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유를 탐지할 수 없는(inscrutable) 것임을 인정하게 하신다는 주장은 적절하다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압도의 교육의 ‘효과’만이 아니라 그 말씀에 담겨진 ‘구체적인 내용’을 간과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이는 욥의 두 질문-세계의 무질서(12,21장), 하나님 자신의 비도덕성(9장)-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① 38:1-40:2 – 세계의 무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답

   하나님께서는 첫째 말씀에서 에차(상담, 설계, 계획)를 방어하신다. 자연의 신비 현상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몰라도, 모두 질서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는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에차가 하나의 헤아릴 수 없는 ‘우산’으로서 세계를 감싸고 있는 것이고, 그 세계는 완전한 질서의 세계다.  

 

② 40:6-41:34 – 하나님의 비도덕성에 관한 하나님의 답 

   하나님께서는 둘째 말씀에서 자신의 미쉬파트(정의)를 방어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너는 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악하다고 하느냐?”고 물으신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비꼬는 투(with a mocking tone)로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악한 것들을 다스려 보라고 명하신다. 이는 욥이 전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교만한 자와 악한 자를 제압한다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은 옳은(righteous)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뜻도 들어있다. 이어서 브헤못과 리브야탄이라는 두 괴물이 나오는 단락도 이들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이 능하실 뿐 아니라 정의로우신 분임을 보여준다.    

 

 이 둘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그의 에차(계획, 질서)를 시행하고 계시다. 이를 그의 미쉬파트(정의, 또는 정의로운 다스림)에 의해서 시행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에차를 신뢰해야 한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에차가 있기 때문에 의인이 고난 받을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의 미쉬파트도 신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인이 고난 받을 때에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며 정의는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내적 연결을 가지고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4. 욥기의 주제

1) mystery 38:1-40:2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

   하나님은 욥에게 세계의 기원(38:4-15)과 그 통제됨(38:16-38)에 대해서, 동물들의 신비한 생태(38:39-39:30)에 대해서 물으신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앞에 욥의 답변(40:3-5)은 “나는 작습니다”이었다. 이는 인간이 다루거나 변개할 수 없는, 또한 다 인지할 수조차 없는 신비한 영역의 것, 즉 인간 능력의 너머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2) just God 40:6-41:34 “하나님의 정의”

   악한 두 괴물을 제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보여주심으로, 악을 시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을 제어하고 이 세상에 의와 선을 보장하는 존재[‘의’의 집행자요 세계 도덕 질서의 주권자]로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 이에 대한 욥의 답변(42:1-6)은 회개이다. 하나님의 ‘질서’와 ‘정의’가 사실은 “자신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경이로운 것”(things too wonderful for me; 닢라옽 밈멘니)임을 마침내 깨달았다.  

3) He is still there “most hidden and most present”(어거스틴)

   욥은 하나님이 그가 고난당할 때 함께 계시지 않은 줄 알았으나, 이제 그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지탱하시는 임재(the sustaining presence of God)를 꾸준히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4) 고난 받는 자의 “의”는 최상의 가치 42:7-17(결언) “욥의 회복”

   욥기 결언에서는 세 친구(와 엘리후)가 아니라, 욥이 하나님을 바로 이해한 것을 말해진다. 하나님은 욥이 본래 소유했던 것들을 두 배로 회복해 주심으로 욥의 결백을 입증해(vindicate)주신다. 또한 그가 “수한이 차서” 죽은 것 역시 그의 결백이 증명된(vindicated) 것이다. 화자는 결언에서 독특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 세계의 신비가 불가해하다는 것을 중심 주제로 인정하면서, 보응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 인간의 삶의 원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과정이 하나님의 ‘에차’ 안에서 ‘미쉬파트’하게 시행되는 하나님의 신비임을 인정하며 기계적으로 보응의 원리를 적용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5. 맺는 말

 구약성경의 신앙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표현되어 있다. 욥기는 신정론[theodicy: 하나님(theos)과 정의(dike)가 합쳐진 말. 인간의 고난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다루고 있는 성경으로써, 이는 이스라엘과 구약성경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인 “의”의 과격한 한 측면을 탐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무례할 정도로 하나님께 도발하며 묻는 질문에도 진지하게 답변해주시는 분이시다. (좋은 신앙의 사람은 그저 질문 없이 기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들을 말하지 않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적절한 시간에 고난 자체도 제거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일을 하시기 때문에 감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는 인내로써 기도하며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믿음은, 믿을 수 없음을 한번 거친, 믿을 수 없음을 넘어선 믿음의 고차원을 지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본서가 반복하여 강조하듯이) 욥기의 주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인간의 고난, 또는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도덕 질서(하나님의 주권-섭리)란 인간의 눈에는 불가해한 것이다. 고난(특히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보응의 원리, 또는 반 보응의 원리로 기계적으로 답할 수 없는 수수께끼(understanding beyond ununderstandability)이다. 
(2) 비록 인간의 눈에는 불가해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운 통치자이시다. 악과 혼돈을 만들어내시지 않고, 오히려 제거하시면서 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시키신다.
(3) 하나님의 부재(absence or hiddenness)를 경험하게 될 때에도, 그러나 그분은 거기에 여전히 계시다(He is still there)! 그렇기에 불가해한 고난의 시간, 그 시간이 도리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4)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여전히 우주를 의롭게 운영하시기에, 궁극의 시점이 되면 하나님의 의로움이 보응의 원리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그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의를 소중히 간직하시고 결국 이를 갚아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여 있으며, 고난자의 의는 최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써 하나님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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