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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지혜서 연구] 제1장 지혜의 개념과 지혜서의 성격 본문

독서노트/대략, 요약

[구약 지혜서 연구] 제1장 지혜의 개념과 지혜서의 성격

白부장 2020. 4. 1. 09:21

제1장 지혜의 개념과 지혜서의 성격

구약에서 잠언, 욥기, 전도서, 아가를 가리켜 지혜서라 한다(에스더도 지혜서로 취급할 수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본서에서는 제외함). 왜냐하면, 이 책들은 공통적으로 “지혜”라는 주제를 다루며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서는 하나님과 보편적인 인간의 관계를 강조하여 인간적인 입장에서의 신앙과 윤리를 귀납적이고 설득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1. 지혜서 연구의 의의

지혜서는 구약의 다른 성경에 비해 관점과 표현방법에 있어서 독특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20세기 중반까지 학술 연구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이제야 연구 실적들이 급속히 집적되고 있는데, 아직은 세계적으로 충분히 연구되었다 할 수 없는 ‘유아기’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사역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와 실존적 고민들의 풍부한 유익이 전달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지혜서를 깊이 공부하기 전에는 우리의 신앙이 다소 ‘위기관리’에 치우친 면이 있기 마련인데,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에 허락된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삶의 방법’을 가르치는 지혜서를 통해서 신앙생활의 균형감을 꾀할 수 있다.

 

2. 구약 지혜서의 특징

구약 지혜서는 다른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의 특수한 성격을 부각하는 것과 달리 “바른 삶” 혹은 “효과적인 삶”이 무엇인가 하는 보편인류의 실존적 고민에 대한 실천적인 답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구약 성경이 “언약”, “구속사”, “선민” 등에 대해 지시적이고 권위적으로 다룰 때, 지혜서는 인간의 삶의 배후에 있는 도덕 질서를 탐구하여 거기서 얻어진 통찰을 가지고 삶의 요령(the art of living)이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가르쳐준다. 여기에 은혜, 회개, 기도, 경건 등보다 생활, 인격, 책임, 의식 등과 관련된 주제들이 많이 다뤄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약 지혜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도덕 질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르게(의롭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르게(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직하고 성실하며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삶이 의로운 삶인데,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다. 지혜서는 이와 같은 삶의 성공비결을 피교육자(특히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가치관을 형성시켜주고, 또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실천 의지를 북돋아 주고 있다.      

구약 지혜서의 특징을 더욱 살펴보도록 하자. 지혜서 이외의 책들이 하나님께 초자연적으로 받은 계시와 ‘직접’ (주어진) 계시의 수납의 장이 된 ‘역사’에 관심을 표출하는데 반해, 지혜서는 ‘창조’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켜 관찰과 사색 등을 통해 인간의 경험에 ‘발견된 진리; 간접 계시’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내용 / 책 구분

비지혜서

지혜서

신학적 주제

언약, 구속사, 선민

(특별 은총)

삶, 도덕 질서(보응의 원리)

(일반 은총)

인간관

죄인

하나님의 형상

관심의 대상

역사

창조

실천적 강조점

은혜, 회개, 기도, 죄

의식, 책임, 인격

실천적 용도

위기 관리

평소 관리

계시 형성 방식

‘직접적’ 성격(주어진 진리)

* 구속 신앙(신학)

‘간접적’ 성격(발견된 진리)

* 창조 신앙(신학)

 

 

3. 지혜의 개념과 정의

 1) 지혜의 개념과 범위

구약 성경에 “지혜”라는 뜻의 하함חכמ을 어근으로 하는 단어는 318회 나오는데, 그중 58%에 해당하는 183회가 지혜서 세 권(잠언 102회, 욥기 28회, 전도서 53회)에 집중되어 있다. 

지혜를 의미하는 추상명사 호흐마는 본래 “무언가를 잘 할 줄 아는 기술이나 요령(the art/skill of doing something well)”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에 파생하여 그러한 기술이나 요령을 지닌 사람을 당연히 지혜롭다고 말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호흐마”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특수한 직업과 관련된 전문적인 기술

     - 성전을 건축하는 기술(출 28-36장, 왕상 7:14, 대상 28:21)

     -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사 10:13)

     - 항해 기술(시 107:27)

  군왕이나 지도자의 통치 능력

     - 솔로몬의 통치 능력(왕상 2:6, 3:28, 5:9,14,26, 10:4, 11:41, 대하 1:10-12, 9:33) 

     - 여호수아와 다윗의 통치력(신 34:9, 삼하 14:20)

     - 두로 왕들의 통치 능력(겔 28:4,7,12,17) 

  정치적인 책략을 제시하거나 조언하는 기술(사 47:10, 램 49:7, 단 1:4,20, 삼하 20:22, 사 29:14, 렘 8:9)

 

“하함”도 원래특수한 직업 또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막과 성전의 건축에 관계된 제반 기술(또는 거룩한 기명 일반을 제작하는 기술) 지닌 사람들(출 28:3. 31:6, 출 35-36장, 대상 22:15, 대하 2:6,12)

  자수 기술을 가진 여성(출 35:25)

  우상을 제작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사 40:20, 렘 10:9)

  곡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인들(렘 9:17)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출 7:11, 사 3:3, 44:25, 에 1:13)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력을 지닌 사람(창 41:33,39)

  왕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는 모사(창 41:8, 사 19:11, 렘 50:35, 51:57, 겔 27:8, 에 6:13)

-> 호흐마하함특수한 기술이나 기능 또는 그 기술/기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

 

위와 같이 구약 성경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호흐마는 지혜서에 와서는 technical term이 된다. 인생, 즉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관계된 기술(“생의 기술” the art/skill of living)이라는 의미로 제한된 것이다. “경험을 통해 얻어진, 생과 우주의 법칙들에 대한 실천적 지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호흐마는 이러한 중성적 의미에만 그치지 않고, 도덕화되고 신학화된 의미로 쓰인다. 특히 잠언서와 같은 성경에서 두드러지는데, 지혜서는 의로운 길에 보상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렇기에 의롭게(바르고 곧게) 살아야하고, 의로운 삶을 살 때 축복과 형통이 있음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사실상 지혜와 ‘의’라는 말이 동의어로 사용되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란 정의로운 삶의 태도에서만 얻어진다는 깊은 원리를 경험을 통해 뼈아프게 체득할 수 있음을 지혜서는 말하고 있다.

호흐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개념을 넘어 ‘여호와 경외’ 사상을 통해 종교적인 차원과 깊숙이 결부되는 것이다.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시작”(잠 1:7, 9:10, 시 111:10)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경외가 ‘신앙’을 대신하던 용례로 볼 때,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지혜는 여호와 경외에서 출발하지만, 여호와 경외가 그 핵심이고 궁극적으로 여호와 경외를 지향하는 정신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훈련”(잠 15:33)이라고 말해지고, “생명의 샘”(잠 14:27)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여호와 경외는 잠언 1:7, 9:10, 31:30에 배치되어 책의 첫 부분(1-9장)의 핵심사상을 봉투구조(inclusio)로 표시하고, 나아가 책 전체의 인클로지오로도 이뤄져 잠언 전체의 핵심 사상임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호흐마의 신학화는 의인화된 지혜숙녀(personified Lady Wisdom)에서 절정에 달한다(1:20-33, 8:1-36, 9;1-12). 그녀는 마치 선지자처럼, 아니 선지자 수준을 넘어서 인생들에게 자신에게 돌이키라고, 나에게 오라고 외친다. 그리고 자신을 얻으면 “생명”을 얻는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지혜(숙녀)는 인격적 존재일 뿐 아니라 신적 존재로 드러나며, 계시의 중계자, 하나님의 목소리, 하나님 자신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2) 지혜의 정의

  다중화된 지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삶의 요령

  ② 정의로운(바른) 생활

  ③ 여호와 경외

  ④ 하나님의 계시 또는 하나님 자신

  • 지혜(호흐마)는 “경험에 의해 얻어진 삶과 우주의 질서에 대한 지식(지적 활동을 통해 우주 내 하나님이 심어두신 도덕적 built-in principle)이며, 그 지식에 조화하여 바른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능력”

  • “의로운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줄 아는 지식이며, 동시에 이 지식에 기초하여 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태도와 능력”

 

4. 지혜서의 분류(두 종류의 지혜)

 1)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 생활의 실제적인 교훈, 즉 의로운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지혜[잠언] - 경험적(experiential) 지혜, 처방(recipe) 지혜, ‘하등’(lower) 지혜 // 기본 사상은 보응의 원리(retribution principle)로써, 의롭고 바르게 사는 삶에 번영과 축복이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사상이다. 악하고 거짓되게 살면 멸망과 저주를 받게 된다. 이는 지혜 스승들의 정통적 가르침이기도 하다. 

 2) 사색적 지혜(speculative wisdom): 실천적 지혜가 가르치는 보응의 원리가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지혜[욥기, 전도서] - 반성적(reflective) 지혜, 실존적(existential) 지혜, ‘고등’(higher) 지혜 // 정통적 지혜 교훈이 가르치는 보응의 원리에 반발하여 “이단적으로” 사색한다. 의인들이 고난과 불이익을 받고, 악인들이 유리하게 되는 삶의 실존을 놓고 “신정론”적 고민을 하는 것이 바로 사색적 지혜이다. 

  • 사색적 지혜는 반항적 고민 이후에 인간 이해의 한계 너머에 있는 신앙적 해법을 추구함

 

5. 지혜의 한계

개별 금언들의 “진리 주장”이 기본적으로 상대적인 성격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율법은 어느 상황에서나 적용이 가능한 절대적인 명제임에 반해, 지혜서는 계명이라기보다 하나의 설득 방식이고, 특정한 개별 상황들에 적용되는 내용이다. 이렇기 때문에 금언들을 ‘경우 지혜’ (case wisdom)라 칭할 수 있다. 경우에 적합한 행동이나 말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경우 지혜들은 본질적인 특성이 상황성과 제한성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또한 인간 경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혜는 상대화된다. 이는 사실상 하나님은 예측이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에 속한 존재라는 것과 연관이 있다. 그렇기에 지혜서는 정직과 성실에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조타술임을 말해준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에 대해서 인간은 미세한 조정이라도 꿈꾸지 말고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최종적으로 (인간의) 지혜를 상대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전제하여 인간의 지혜를 상대화할 때, 소위 말하는 “인과율의 그물”(a web of causality)에 교조화되어 경직된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욥기와 전도서의 토론과 비판들이 이런 보응의 원리에로의 교조화를 교정해주는 역할을 한다(지혜 내적 교정자inner-wisdom corrective). 

이를 통해, 지혜서는 지혜에 관해 논하고 그것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지혜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지혜자 그룹과 학교의 존재 

학계는 아직 지혜자들이 하나의 독립된 직업으로 존재했는가 하는 것과 그들이 활동했을 학교라는 사회적 기구가 존재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성경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 내에서 지혜자라는 독립된 그룹은 존재했을 것이라 보지만, 학교의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① 적지 않은 분량의 지혜 문헌이 존재한다는 사실: 다른 성경들과 신학적으로 구별되고, 문학 양식조차 독특하다. 사회적으로 일정한 사고와 행동 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와 같이 통일된 성격의 문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다. 

② 성경 자체의 증거(지혜서 밖): 예레미야 18:18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율법에 대해서 제사장 그룹이 있고, 말씀에 대해서 선지자 그룹에게 책임이 있듯이, 모략에 대해서 지혜자 그룹(지혜로운 자)이 책임을 진다고 말씀한다.   

③ 성경 자체의 증거(지혜서 안)

   - 잠언 24:23 “이것들도 지혜로운 자들에게 속한 것이라”에서 “지혜자들”이란 집단이 있었고 “이것들”(금언들)은 그 집단시 생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욥기에서 욥의 세 친구(엘리바스, 빌닷, 소발)는 직업적인 “지혜자들”이었을 가능성

   -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자신을 스스로 하함(지혜자)라고 부른다. 예) 12:9 전도자의 활동 내용을 보면 살피고, 연구, 배열하는 일들을 하는 등 전문적인 학술 훈련을 받은 사람들

     (특히, “지혜자”에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직업으로서의 지혜자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음) 

 

그러나, 지혜자 학교의 존재에 대해서는 성경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이 학교의 존재를 주장하는 근거는, 주위 문명권과의 유비를 통한 추론일 뿐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에서는 지혜 문학을 책임졌던 지혜자들이 학교(이집트의 서기관 학교,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부속 학교 등)라는 사회 기구를 통해 그들의 직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일부에서는 잠언 25:1 “히스기야의 사람들”의 활동을 궁정 학교의 존재로 증거하기도 하지만, 이는 단순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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