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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진] 요한계시록 2:12~17 본문

성경연구/큐티 나눔

[큐티진] 요한계시록 2:12~17

白부장 2014. 9. 25. 08:47

[버가모 교회]

 

 

발람의 교훈 (민 22~25장)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신 23: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민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뇌물을 받아 거짓 예언/충고를 함으로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에 빠지게 한 발람.

 

니골라당의 교훈

 

이 이름은 안디옥의 니골라(행6:5)와 관련된다. 니골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의 일들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으므로 음행을 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그것이 자기들을 더 이상 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연구성경]

 

사탄의 권좌

 

주전 29년에 버가모에  아우구스투스와 여신 로마를 위한 웅장한 신전을 세웠다. 사탄의 권좌라는 것은 바로 이 신전을 뜻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또한 황제 숭배의 중심지로서의 전체 에베소 도시도 의미할 것이다. [연구성경]

혹은 당시 버가모에 존재하고 있던 거대한 제우스의 신전을 가리킨다는 주석도 있다.

 

 

1.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를 행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12절)

 

 

2. 끝까지 이기는 사람이 받게 될 두 가지는 무엇인가?

   - 감추었던 만나,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48~50)

 

 

3. 버거모 교회가 용납한 잘못된 교훈들에 대항해 주님이 싸우시는 무기는 무엇인가?

   - 내 입의 검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 2:8)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7)

 

 

4. 참된 신앙을 변질시키는 잘못된 교훈에 귀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가?

   - 성과 속의 잘못된 구분, 영과 육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여 영적인 것만이 더욱 중요한 것이고, 육적인 것은 어떻게 하든 상관 없다는 구원파식 접근 :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말씀들을 생각해보면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참되다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가 있을 "순종/의지"의 개념을 도리어 교묘하게 도려낸 반쪽짜리 믿음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 개인적으로 적용하자면, 죄에 대해 너무 나이브한 반성들(진지한 회개가 아니라)이 생각난다. 회개하면 어떠한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죄사함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은 정확한 진리이지만, 내 편에서 죄의 문제를 대할 때 십자가의 무게감만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그 은혜를 악용하는 습관들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다를 바 없다.

     

 

5. 나의 삶에 예수님의 날선 검의 표적이 될 만한 것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겠는가?

   - 진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 진리만이 나를 참 자유케 하니까. 예수님이 '내 입의 검'으로 싸우시겠다고 하는 것도, 결국 영적인 싸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부를 보아야한다는 불변의 원칙의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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