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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엔즈, 성경영감설] 2장 - 5. 우리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가?

白부장 2013. 6. 18. 18:47

2장. 구약성경과 고대근동 문학

 

 

5. 우리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는가?

 

   1) 자유주의-보수주의 논쟁의 교착상태 극복 방안 : 어떤 증거가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양쪽 진영이 모두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일련의 가정들이 문제의 핵심인데 그것을 재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시와 영감, 실재란? 좋은 역사서술 등에 대해 갖고 있는 기존의 가정)

 

   2) 저자의 논의에 필요한 기본 전제들

     ① 고고학 또는 문헌학의 성경 외적인 증거들이 우리의 성경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② 모든 신학적 시도는 기꺼이 검증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필연적으로 잠정적인 성격을 지녔음에 동의)

 

   3) 창세기는 신화인가 아니면 역사인가?

    ① 신화 vs. 역사의 양자택일식의 문제제기는 의미가 없다. 신화이니 역사이니 하는 구분은 근대에 와서야 생긴 것이다.

     ② 하나님이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장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신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자!)

     ③ 신화는 인간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고대인들의 대답 방식, (고대인의 세계관, 근대적인 사유나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 인식을 반영)

 

     ④ 고대근동의 신화들은 성경의 기록보다 오래된 것. 그 근거들

          - 이스라엘의 문화는 고대근동 세계에서 늦둥이에 속한다

          - 이스라엘 족장들의 문화는 구전문화였다

          - 히브리어는 족장시대였던 bc 2000-1000년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⑤ 창세기의 이야기들이 언제 문자로 기록되었을까?

          - 셈어의 알파벳은 bc 1700년경에 이르러서야 아주 원시적인 형태로 나타남 (기록되기 전 창세기는 구전문학의 형태로 만들어져 전승, 이는 당시 고대인의 세계관을 이미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

          - 히브리어가 존재했다는 성경 외적인 증거가 bc 1000년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음 (성경 필사본의 最古는 bc 2세기의 '사해문서')

       -> 창세기의 이야기는 처음에 구전문학의 형태로 존재하였으나, bc 1000년 이후 어떤 시점에 오늘날의 형태와 같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⑥ 근본적인 문제 : 창세기가 언제, 어떤 문자로 기록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창세기는 분명히 훨씬 더 오래된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⑦ 창세기가 왜 그토록 다른 고대근동의 문헌과 유사한가?

          - 아브라함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

          - 이스라엘 최초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 (고대근동 지역의 보편적인 그리고 규범적인 세계관의 범주 안에서 살았던 아브라함)

          - 아브라함이 자라온 지역 메소포타미아 지역도, 그가 들어간 가나안 땅도 모두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들로 풍성한 곳

 

      ⑧ 창세기가 고대근동의 신화들과 다른 이유는 성경만이 현대적 의미의 역사적 기록이고 고대근동의 신화들과는 전혀 별개라는 점에 있지 않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불러내신 하나님이 그들 주변의 어떤 신과도 같지 않다는 것이 구별성. 창세기의 메시지가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참 급진적인 것이었다. (야훼가 힘없는 유목민의 신이었다는 것. 고대근동의 종교들은 위계적인 다신교였음에도 유일신 사상을 고수한 신앙)

 

      ⑨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 민족의 조상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시면서, 아브라함이 속한 당시 고대 세계의 신화적 사고방식도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단순히 신화적 세계에 머물게 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고대인의 신화를 변화시키셔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참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하셨다.

 

      ⑩ 성경이 현대 과학과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성경을 보호하거나 현대인들에게 성경의 신뢰성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⑪ 창세기는 고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실은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창세기가 그런 고대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서 창세기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측면이 전혀 약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⑫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세계로 들어가신다. 그분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인간 문화의 옷을 입는 것을 하나님 답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견해에 반대한다. 인간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방법이었다. (성육신 유비)

 

 

   4) 계시인 성경은 독특해야 하는가?     

      ①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과 윤리적 기준(율법과 잠언)이 이스라엘 고유의 독특한 것이 아니다. (※ 이 세계에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원리가 있고, 이 원리가 세계 모든 사람들 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

 

      ② 이스라엘의 율법이 계시인 이유는 그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율법이 주변 국가들의 윤리에 정반대 되는 윤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율법을 지킴으로써 이스라엘이 신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져 가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자신들 안에 구현하는 사람들)

 

      ③ 이스라엘의 율법은 동기와 그 역사적 조건에 있어서 그 주변국의 법전과 구분된다. 그러나 법률의 세부 사항에 들어가면,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하나님의 법과 지혜는 고대근동의 세계 속에서 '성육신'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과 지혜가 '성육신'하였다는 것은 그것들이 고대근동의 문화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④ 이스라엘의 율법서와 지혜문학의 독특성은 그 내용에 있지 않고, 그들이 율법과 잠언을 통해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있다.

 

 

   5) 좋은 역사서술은 반드시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일 수 있는가?

      ① 구약성경 자체의 내적인 문제. 텔단 비문과 실로암 터널 비문은 단지 지나가는 언급, 역사서술은 아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 선전과 같은 메사 비문 (고대근동 세계의 전형적인 역사서술)

 

     ② 이스라엘의 역사서술은 자기성찰의 산물로써, 일종의 "편향된" 역사서술이다.

 

      ③ 역사가란? 역사적 사실을 자신만의 각본(version)으로 기록하는(혹은 구두로 전승하는) 사람들

          - 역사서술은 한 마디로 해석작업

          - 역사적 사건들을 합목적적으로 재구성한 것, 역사적 사건과 분리되는 것 아님

 

 상호작용

역사적 사건

상호작용

 사건의 기록

(문서전승 혹은 구두전승)

상호작용 

 사건을 기록하는 목적

 

 

      ④ ex)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이 유배를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록됨 (여타 수많은 사건에는 관심이 없고, 왕들의 지속적인 우상숭배에 포커스를 맞춤) / 역대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조망한 역사서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님의 언약에 재접속하려는 노력)

 

      ⑤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서술의 다양화 현상이 성경 안에서도 나타난다.

 

          - 나단이 다윗에게 한 예언 : 복음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로 두 개의 상이한 진술이 서로 모순되지 않도록 (나단이 다윗에게 두 차례의 다른 상황에서 두 개의 상이한 진술을 했다고) 절충해버림)

 

 삼하 7:16

 대상 17:14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 : 공관복음은 공생애 마지막에, 요한복음은 공생애 초반에 (성전청결 사건이 두 차례 있었다고 절충해버림)

 

       ⑥ 역사서술은 본질적으로 역사가의 목적에 의해 형성된다. 성경의 역사서술도 마찬가지. 성경의 역사서술이 서로 모순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진 것이기 때문. 성경에 나타난 관점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통해서이다.

 

       ⑦ 성경에서 어느 정도로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 이루어졌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의 주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⑧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질문들에 대답하는 자세다. 즉 우리가 성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때때로 그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시작부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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