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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어머니께 (간사 파송식)

白부장 2016. 7. 6. 01:33

엄마, 결국에 이런 날이 왔다.

어렸을 때부터 가끔 내가 사역자가 되고 싶다 했을 때마다

다른 건 다 해도 그건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죠이선교회 학원사역부 캠퍼스 간사라는 사역자로 들어서는 첫 발걸음에

엄마를 앞에 모셔두고 이렇게 편지를 읽는 날이,,, 결국 왔네.

 

편지로 내 마음이 다 전달될까 모르겠지만,

그리고 엄마 성격에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 이야기하는 거 안 좋아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그래도 참 의미 있는 날이니까, 한 번 용기를 내보려고.

 

덧붙여서 비록 이 글은 저의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이 자리에 오신,

그리고 사정상 이 자리에 오시지 못한 우리 모두의 부모님께 드리는 글입니다.

저희 33기 간사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마음에 품고

항상 감사해하면서 부모님들 위해서 기도하고 있답니다.

 

훈련 들어오기 전에 죽마고우 녀석이랑 만나고 돌아오던 길이 떠오릅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해온 녀석에게,

간사가 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그 녀석의 반응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일 먼저는 어머니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빠에게서 암이 발견되어 수술했을 때도,

정작 중국 선교 가있었던 아들을 대신해, 혼자 고생하던 엄마에게 아들 노릇했었고,

아빠 돌아가시던 날, 누구보다 먼저 장례식장에 와서,

혼자인 상주와 어머니가 외롭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던 녀석의 말이라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간사하지 말고 좋은 대학 나왔으니까, 좋은 직장 들어가서,

그곳에서 신우회를 만들든지 하면서,

어머니와 사역, 두 부분 모두 만족시키며 살면 되지 않냐는 합리적인 말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미쳐,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내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엄마가 기대고 의지해야할 사람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나 하나인데.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내 안에 즐거움과 소원함도 물론 있지만,

마치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가 부득불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이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까지도 살 수 있구나 하면서,

내가 대단해보이고, 아무도 먼저 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하는 선구자 같고,

그런 즐거움이 있었는데,

 

어머니, 엄마,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또 나처럼 자격 없는 자를 선대하셔서,

은혜를 베푸신 주님이 감사하고,

그러한 주님이 나를 복음 전하는 자로, 공동체를 세우고, 젊은이들을 깨우는 자로

세워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훈련받으면서 순간순간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정말 나를 간사로 부르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면,

엄마, 더 이상은 뒤를 돌아볼 수 없게 됩니다.

 

나를 불러 간사로 세워주신 분을 내가 신뢰하고, 그 분이 나를 지키실 뿐 아니라,

내 마음에 가장 큰 부분인 엄마를 책임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해요.

그 마음을 가지고 지금 제게 주신 이 길을 걸으려 합니다.

어머니, 엄마, 엄마는 내가 처음 간사가 되겠다고 어렵게 말을 꺼내어 놓았을 때,

그 날 밤 잠 못 이루고 밤새 신음했었죠.

몇날 며칠을 기운 없어 하고 사는 재미를 찾지 못하고 아파하던 엄마는,

그렇지만 제가 합숙훈련을 들어오기 전 날,

세심하게도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속옷과 양말을 새로 사서 챙겨놓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마음먹고 모셔 간 백화점에서,

부담되신다면서 끝끝내 좋은 것 못 고르시면서,

합숙 다녀온 아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픈 마음에 시장부터 가시는 분이기도 하고요.

 

시간을 돌아보면 매번 그랬던 거 같아 마음이 더 짠합니다.

 

어렸을 때 처음 제사를 지내는 게 우상숭배라고 교회에서 배우고 온 어린 저를,

집안의 장손임에도 불구하고 절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세워준 것도 엄마였고,

 

대학입시를 잘 하지 못해서 엄마 앞에서 미안하다고 눈물 펑펑 흘리던 아들 앞에서는

괜찮다고 위로만 하시더니, 뒤에서 우시던 분도 엄마였습니다.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 먹여가며 좋은 대학 들여보낸 아들이,

어느날 중국이라는 나라에 미쳐서 아무것도 보장안된곳에 가서 단기선교사로 살겠다고 할 때,

말로는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마음은 보내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그게 잘 안된다고,

눈물 흘리시던 것도 엄마였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당시에 출국을 하려면 보증인을 세워야할 때,

본인이 원치 않는 중국행을 선택한 아들을 위해서,

관계가 소원해진 친척 분들에게 전화를 해서 대신 보증을 서달라고 한 것도 엄마입니다.

겉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매주 구역예배 때마다 본인의 기도제목은 안 내시면서도,

아들이 하는 사역을 위해 합심기도를 해달라고 기도제목 내놓으시는 분이 우리 엄마입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아빠가 큰 수술을 할 때도,

아들이 하는 전도의 일에 방해될까봐 끝까지 비밀로 하면서 혼자 견디려 한 것도 엄마였고요.

 

군대 영장이 나왔는데,

공동체를 잘 섬기고 싶다고, 더 훈련받고 나중에 군대 가겠다고 할 때도,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면서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것도 엄마였습니다.

 

아빠가 오랜 시간 투병생활 할 때도, 아들은 군생활하느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혼자 쪽잠을 자가며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는 병원에서 아빠 병수발 들고,

혼자 그렇게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면서도 내 걱정을 해주시는 것이 엄마였습니다.

 

그렇게 인생의 무게를 지며 살아온 엄마는 아들에게 큰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대기업이 아니어도 되니,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살아달란 부탁만을 하였습니다.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에도 또 엄마가 원하시는 그런 삶을 살지는 못하고,

또 다시 당신의 희생과 견딤을 요구하는 삶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에게 제가 한 가지 확실히 보장할게요.

 

복음이 전해지고, 성경이 읽혀지는 곳에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의 거짓 없는 믿음이 칭찬받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는 평생에,

엄마가 나의 신앙이 모범이었다고 전해질 것입니다.

엄마, 엄마가 나를 향한 기대를 내려놓은 댓가는,

그렇게 엄마 속을 썩히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엄마 표현대로 웬수같은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서,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면서,

섬기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뤄갈 그 공동체에,

내 믿음의 본이 엄마였다고 자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엄마, 우리 함께 걸어요.

제가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지금은 하늘에 있는 우리 아빠와,

이렇게 먼 길을 찾아서 아들의 파송식에 참여해준 우리 엄마라는,

너무 아름다운 두 사람을,

내 엄마와 아빠라는, 선물로 주셨다는 거야.

 

어쩌면 영원히 철 안들지 모르는 아들이지만,

함께 걸어요, 엄마.

 

201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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