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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현장/이야기들

[학원선교사역자 컨퍼런스 발제] 죠이선교회 소개

白부장 2016. 7. 6. 00:43

믿음, 느리더라도 정확하게 그리고 함께 돌파하게 하는 힘

- JOY 선배들이 마주한 현실과 넘어섬의 동력 -

 

JOY 백운용 간사

 

교목실에서 “JOY 선배들이 마주한 현실과 넘어섬의 동력이라는 주제를 갖고 요청이 들어왔을 때 왠지 모르게 선뜻 응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 55주년 창립기념 예배가 있기도 하고, 막상 오랜 시간 속해있던 공동체 인데 저도 선배들의 믿음의 역사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마침 저도 그것이 궁금하던 차에 잘 되었다 기대했지만, 막상 준비를 해가면서 아, 우리 공동체가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공동체구나.. 앞에서 하시는 CCC와 비교 많이 되겠다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는 제 이야기가 어떤 적확한 자료에 근거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못될 것 같고요. 단지 같은 시기 비슷한 고민을 할 우리 간사님들과 사역자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캠퍼스 사역이나 복음화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그것을 넘어서는 믿음의 동력에 관한 것은 CCC에서 충분히 잘 해주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개인적인 이야기

 

1) 반수시절 이야기 JOY에 오기까지

네비게이토, CCC, CBA

교회 누님과 집사님의 권면, 죠이가 말씀이 좋다더라.

 

2) 학부시절 이야기 지겨울 정도로 들은 눈사람 이야기

입학식날부터 난 죠이어

눈사람 이야기. 산 속에서 수련회를 하다가 폭설로 인해 갇히면,

IVF-회의를 통해 결정, 책 갖고와봐라, 어딘가 노하우가 적혀있을 것이다.

CCC-삽갖고 와라, 눈 다 퍼내고 산 아래로 진격해 내려가자.

예전단-같이 기도해보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JOY-눈싸움하고 놀자.

공동체성/교제를 중시하고, 즐길 줄 아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좋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3) 간사시절 이야기 속았다

막상 간사로 지원해서 생활해보니, 처음에 가장 많이 가졌던 느낌은 속았다.”

아까 자료 정리 이야기도 드렸지만, 무언가 체계적으로 잡혀 있는 것이 없는 느낌.

차라리 아까 눈싸움처럼 어떤 일정한 특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선교, 전도, 제자훈련. 그 어느 것 하나 전문적인 것 같지 않은. 애매한 느낌.

혼자 방치되어 각개전투하는 느낌.

3년 차 재계약 문제로 고민하는 시점. 이곳에 소망이 있나? 롤모델을 찾을 수 있나?

이런 시점에 저희 공동체의 옛 선배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 제게는 오히려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요,

 

2. JOY 선교회를 소개합니다.

 

1) JOY의 비젼

 

JOY의 비젼

죠이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섬기는 탁월한 그리스도인들을 세워 하나님 나라를 실현한.

 

JOY의 주제 말씀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고후5:20)

 

죠이 스피릿 (JOY spirit)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spell JOY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내 자신을 마지막으로 둘 때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죠이 선교회는 CCCIVF 같이 캠퍼스 사역을 전문적으로 해오던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죠이는 사실 1958년에 7명의 한국 대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자발적인 학생 영어 성경공부 모임이었습니다.

 

보다 나은 그리스도인 지도력을 함양시킨다

영어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회원들에게 영어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남녀 회원 간의 친목과 교제 그리고 협동심을 고취한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 동아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름도 JOY Youth Club이었습니다. 사역, 선교, 복음화 등에 대한 마음을 갖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죠.

 

그러던 것이 1965년에 대학을 졸업한 회원들이 생기고 구성연령층이 확대됨에 따라, JOY Club으로 바뀌게 되고요.

 

1976년에서야 비로소,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해외선교와 제자 파송의 비젼을 더욱 크고 구체적으로 품게 되면서 명칭을 죠이 미션으로 바꾸게 되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르게 됩니다.


2) JOY의 시대 구분

 

JOY Youth Club (1958~1964)

JOY Club (1965~1975)

JOY Mission (1976~현재)

- 사역의 시작과 발전 (1976~1993)

- 사역의 확산과 성장 (1994~현재)

그래서 초창기 선배들께서는 항상 이런 고백을 하셨다고 합니다.

 

죠이가 오늘과 같은 선교회로 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초창기 선배들의 고백)

죠이는 이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어떤 자료나,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놓지 못한 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시대별 변화에 맞춰, 죠이 선배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보고, 그것을 넘어섰던 믿음의 동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한국기독교 전체의 맥락 속에서 도전과 응전을 조명하여서 오늘의 사역 현실 가운데 적용할 수 있는 원리와 원칙들을 같이 고찰해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저희 단체가 마주한 현실과 그것을 극복했던 동력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한데, 아무쪼록 우리 간사님들과 나누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이야깃 거리들이 들려졌으면 좋겠습니다.

 

3. JOY가 마주했던 현실, 그리고 넘어섬의 동력

 

1) Youth Club에서 Club으로의 변화

 

마주한 현실

한국 기독교적으로 1965년 즈음은 1965년 전국을 휩쓴 복음화 운동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기독교계가 부흥하던 시기였습니다. 기독 인구가 5%를 넘지 못하는 오랜 시기를 거쳐 이 시기 쯤에는 10%대에 이를 정도로 한국 전체적으로 부흥하던 시기였습니다.

 

죠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적인 팽창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 양적인 팽창

대학을 졸업한 회원들이 생기고 구성 연령층이 확대됨

목요기도회를 통한 영적인 부흥을 경험

 

- 교회갱신 운동의 필요성

1960, 70년대의 한국교회 : 부흥의 시기

부흥의 한계 : 현세 중심의 기복신앙’, 사이비 이단의 출현

 

그런데 이런 양적인 팽창에는 어두운 그림자 역시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복신앙과 사이비 이단의 대거 출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광범위 하게 확산된 한국교회의 기반에는 기독교 신앙 입문의 동기가 현세적인 이익, 축복 등으로 점철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가 불안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크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에서 사이비 이단 종파들이 많이 출현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960~70년대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등도 이 시기에 발흥했고, 다 헤아릴 수 없는 비정통 기독교 종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목요기도회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매주 기도회 때마다 10-15명이 회심하고 구원을 받았으니까요

성찬식을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고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홍성철 목사의 회고)

 

이런 시기를 맞아 죠이 선배들은 어떻게 극복해나갔나 보면,

 

넘어섬의 동력

첫 번째는,

- ‘전략을 하나님의 인도하심뒤편에 위치시키기

이게 어쩌면 제가 제일 많이 묵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서두에 제가 저희 단체가 약간은 주먹구구식이며, 어떤 전략이나 방향성 등이 명확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한 답답함을 이야기했었는데,

사실 지난 죠이의 역사를 보니, 사람이 나서서 무언가 강한 리더십을 갖고, 검증된 전략과 노하우를 갖고 사역을 키워왔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학원복음화를 위한 전략을 갖고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단지 그 시기시기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인도하심을 보고

"아,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거지?"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저 쫓아가는 단체였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이고, 또 어떻게 보이면 미련해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선배들의 지난 역사를 훑어보면

"사람이 먼저 하나님보다 나서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이끌어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는 고백들을 할 수 있도록 철저히 하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저희 선배들의 믿음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어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인원이 늘어나고 구성원이 확대되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부흥의 역사를 함께 경험하게 되니까, 그제서야 조금 더 사역적으로 틀을 조금씩 잡아가는 방향을 찾아보고, 파라처치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모색해보게 됩니다.

목요기도회 중심의 모임이었는데, 찬송, 기도 응답에 대한 간증, 말씀, 기도제목 나눔, 기도 순으로 단순하게 진행하였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구령의 열정이 생기고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그 결과 나중에는 수백 명의 회중이 모이게 되는 결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역의 전문화

para-church로서의 정체성을 모색

 

- 3인 리더십 협의 체제

1인 카리스마 리더십의 지휘 아래 있지 않음

JOY 공동체성에 많은 영향 (연합 사역 중시, 나눔과 토론 강조)

 

그리고 또 하나는 복음 자체를 강조하는 모습을 띄었다는 것이었습니다.

- 복음 자체의 강조

구원의 확신을 점검

기도회와 수양회를 통해 복음을 설교하고 기도하며 간증하는 것이 주된 활동

당시 죠이 모임을 가면  

"너는 구원의 확신이 있니?", "복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등의 질문을 선배들에게 자주 들었어요

매주일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미션스쿨인 고등학교에서 성경 수업도 받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다소 생소하게 들려서 이단이 아닌가 의심도 해볼 정도였어요.” (한 선배 죠이어의 회고)

 

이단도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 영적으로 큰 부흥을 경험하고 나서 그것을 선배들과 함께 점검하며, 구원의 확신과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들을 점검하여 균형 잡힌 신앙으로 연결하는 것이 매 모임의 주된 나눔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2) Club에서 Mission으로의 변화 - 1976

 

마주한 현실

- 캠퍼스 사역을 통한 선교의 필요성 (후발주자로서의 막연함)

- 어두운 사회적 현실

 

넘어섬의 동력 

어쩌면 기존의 체계들이 별반 무거운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죠이 선배들은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들이 지금껏 해오던 것들에 변화를 주는 것을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건 최근의 예이기도 한데요, 난주선언. 셀로의 변화. 양육과 전도.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음.

 

아무튼, 1976년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더 큰 비젼을 품게 되었고, 그에 따라 명칭을 죠이미션으로 바꾸면서, 기존 관계 중심의 클럽에서 해외선교와 제자파송을 위한 선교회로 전환하기 위해 조직과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게 됩니다.

1979년에는 회관을 짓게 되는데요. 이전까지 모든 죠이어들이 한 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회를 하던 것에 더욱 힘을 싣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대학생 사역이 죠이 사역의 주류이기는 했지만 여러 사역 중에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간사님들을 통하여 캠퍼스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1979년에 이대 캠퍼스 모임을 시작으로 조금씩 구조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 구조의 변화

come structure에서 go structure(1979년 이화여대에서 최초)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1981년에, 간사들과 선배들은 죠이선교회의 주력 사역분야가 해외선교, 교회의 평신도 제자훈련, 직장선교, 학원사역, 출판 사역 등 5개임을 확인했으나, 교회가 아닌 파라처치 무브먼트로서의 죠이의 은사와 사역을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결론적으로 죠이 사역의 본류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제자로 키워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익을 감당케 하는 것이라고 판단, 대학부 사역을 본류로 남기고 1985년에 일반부와 학사부를 폐지하고 각 캠퍼스 모임을 활성화 시킵니다.

그러면서,

7단계 제자훈련 프로그램 정착 (이태웅 목사 주도)

 

이렇게 캠퍼스 사역에 집중하면서 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캠퍼스 사역의 열매로 해외선교 지원자들이 선교사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에 발맞춰 1988년에는 창립 30주념 기념 행사로 선교한국 대회로 개최하고, 이것은 격년별로 열리는, 학생선교단체, 파송단체, 지역교회 등이 연합하는 선교한국 대회로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 선교에의 헌신

1988JOY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선교한국 대회 개최

19901 단기선교여행 LPP(필리핀 비젼트립)

35명의 학생이 2주 동안 필리핀으로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왔는데, 이것은 죠이선교회를 넘어 한국 선교역사상 첫 번째로 시도된 단기선교여행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여행이 활발히 일어나는데 작은 이바지를 하게 됩니다.

 

- JOY 선배들의 한계

어두운 사회적 현실과의 괴리

 

분명 화요모임에도 일부분 문제점이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세상(사회)과 유리된 경우가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지금 생각하면 약간 편협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고 보니까요.” 

(연세대학교 89학번 선배님의 회고)

 

 

4.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 - 우리가 마주한 현실, 그리고 넘어섬의 동력

 

1) 마주한 현실

 

2) 넘어섬의 동력

위기를 빠르게 돌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느리게 돌파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는 것이다.

공동체를 탁월하게 경영하는 간사가 아니라, 양육대상자를 진실하게 복음대로 살도록 만드는 간사가 되어야한다.

간사의 사역 마인드 자체가 come structure에서 go structure로 전환되어야 한다.

연합 사역은 덤이 아니다. 원래부터 핵심적인 사역이었다.

조금 더 균형 잡힌 신학을 배워야한다. 하나님 나라의 관심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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