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나누는 임재
임재(함께 있어주는 것)는 약함의 섬김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그들의 연약한 부분에서 연약해지고, 그들이 연약해지는 입장에 처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꺼이 상대방이 당하는 고통을 겪는 것이며,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당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통당하는 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것과 다르다. 임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방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암시를 주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당신보다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옆으로 비켜 서십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습니다."
오히려, 임재는 고통당하는 이가 노출되어 있는 일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연약함 가운데 상대방과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나누는 임재는 침묵의 긍휼을 통해 이루어지는 강력한 사역이다.
- 데이비드 앗킨슨, [욥기 강해], 아이비피 비에스티 시리즈 중에서..
<묵상>
하나님이 삶의 문제들에 닥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해결책은 당신의 임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에이~ 그게 뭐! 솔루션을 달라고!"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단기처방 밖에 안된다.
임재가 우리에게 축복인 것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엄청나게 존중하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위의 글처럼 하나님이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당신께서 다 하시니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고통을 당한 우리의 입장과 자리를 지켜주시며 우리가 그 고통을 충분히 감당하는 특권을 존중하시되, 그저 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큰 축복이다.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창조의 모습 그대로, 타락한 우리 인간을 존중하시고 아끼고 또 사랑하시면서, 그가 그 고통의 문제에 있어 담대히 당할 수 있도록, 적절한 자리와 입장에서 함께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해주신다니,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생각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참으로 더 존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