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진] 호세아 6:1~11
[관찰]
1.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참된 회복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2. 하나님은 종교적인 행위보다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모두 타락했다.
[해석]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 있다. 그분이 참으로 사랑 많으신 분이시고, 얼마나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에서 신실하셨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그래서 호세아는 외친다. 우리가 돌아가고자 하면 어김없이 우리를 품어 안아주시고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싸매어주며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반역하고 떠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힘써 알아야 한다고!
2.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시다. 종교적 행위(제사나 번제 등)은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 도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하나님과 풍성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참된 목적이었다.
3.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죄악이 너무 관영해서 세겜과 길르앗과 같은 도피성에서도 살인죄가 넘쳐났고,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죄를 짓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죄악이 너무 깊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부터 멀어지게 되고(거룩을 싫어하는 죄의 성향으로 인해), 더구나 관성의 힘이 죄된 삶을 더욱 조장하기 때문에 죄에서 자기를 돌이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한 번 시작된 죄악된 삶은 심판에 이르기까지 달음질하는 경향이 있다.
[적용]
1. 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살고 있는지 반성해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그 분과의 풍성한 교제에서 오는 민감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2. 간사는 소위 말하는 종교적 행위가 굉장히 많은 직업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리드해가는 위치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가 나를 엄밀하게 성찰해내지 않으면 이 시대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된다. 자기를 위해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것이 더 좋고, 되려 앞장 서서 죄를 짓는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가?
[실천 계획]
1. 지난 주는 개인적으로 말씀 앞에 서는 시간이 굉장히 적었던 것을 반성한다. 새벽 예배의 시간을 꼭 확보하는 것과, 그 이후에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반드시 개인 경건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말씀의 날선 검으로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물러서지 말아야만 한다.
2. 말씀과 더불어, 신론에 대한 공부를 조금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아는 그 수준에서 계속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하나님을 알아가자. 그 분을 더욱 깊이 알아가자. 개인 경건시간 뿐 아니라 조금더 공부하자. (cf) [하나님을 아는 지식] 북 쉐어링도 조금 더 충실하게 진행해보자. 나를 위해서라도 그 시간이 더욱 풍성해야 한다.)
3. 침잠되어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원론적인 대답 말고 실천적인 방안을 고민해봐야겠다. 그런데 그런 방안이 있기나 한 걸까..